발간과 고품격 명상숲길 조성 통도사 현문 주지스님 소임…『신편통도사지』

“이 절을 창건하신 남산 종의 종주 자장율사에게 지극정성으로 목숨을 바쳐 귀의하여 예를 올립니다.(지심무례 남산종주자자장율사) (통도사 예불문중)

643년 신라 선덕여왕의 요청에 따라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자장 스님은 ‘대국통(大國統, 왕이 임명한 승려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임명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에게 계를 내리고 각 지역 사찰들을 순회 감독하게 하였으니, 이는 승가의 지계 청정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중국 오대산에서 옮겨온 불진신사리를 황룡사와 통도사에 봉안하였다. 적멸보궁이 이곳에 처음 조성됐다. 비록 경주 황룡사는 사라졌지만 경남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은 아직도 부처님이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불지종가 국지 대찰이자 세계문화유산도량인 영축총림 통도사의 1400여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신편통도사지가 2021년 1월 발간됐다. 이 책의 부제는 『한국불교근본도량통도사, 1375를 기록하다』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통도사의 종합적인 사료를 충실히 담고 있어 『실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라시대 대국통을 지낸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의 1375년 역사를 생생하게 담은 신편통도사지는 상하 2권, 1300여 쪽에 이른다. 상권은 통도사의 사상과 역사를, 하권은 다양하고 풍부한 각종 기록과 자료를 시대에 맞는 언어로 정리하였다.

『신편통도사지』는 통도사의 창건 이념과 중심 사상을 비롯하여 개산 이래 오랜 세월을 이어가며 중창을 거듭한 전각과 당우 등 통도사의 유무형 유산을 종합적으로 기록했다. 또 총리의 수행교육기관인 선원 율원 염불원 강원의 역사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특히사지의완성도를높이기위해각종사료와비문,시문,찬문,기문,상량문,기행문,소소문,주련,암각까지상세히조사하여올렸다. 이를 통해 통도사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통도사 대웅전 4면에는 대웅전(동쪽), 대방광전(서쪽), 금강계단(남쪽), 적멸보궁(북쪽) 등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 있다. 적멸보궁’이라고 쓰인 현판 아래 주련에 통도사의 신성이 깃들어 있다.

만대의 전륜왕입니다. 삼계주 만대륜왕 삼계주/쌍림에서 열반에 오른 지 몇 해였는가(쌍림시적 적막천추)/진신사리가 지금도 남아 있으니(진신사리금유예재)/중생들에게 예불을 쉬지 못하게 하고(보사군생예불휴).’

구하 스님이 건넨 떡에 열다섯 살에 출가.제2주지를 맡아 ‘복지에 전념하는 통도사’를 천명

이런 통도사에 2019년 5월 새 주지 스님이 임명되었다. 현문 스님이다. 두 번째 주지스님이다. 진산식에 필요한 일체 비용은 저소득 계층을 위한 자선 활동에 기부했다. 화려하고 권위적인 취임식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 환원이 더 의미가 크다는 게 이유였다. 현문 스님은 주지 취임 일성으로 복지에 전념하는 통도사를 천명했다. 석남사가 운영하는 울산시립노인요양원과 10년 이상 된 자비원을 축으로 요양원, 실버타운, 납골당 등을 점진적으로 설립하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제시했다. 또 제2의 통도사 성보박물관 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한국 불교 최고의 총리가 되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현문 스님은 “총림은 전통적 수행의 가풍 위에서 서로를 탁마하는 종합 수행도량이다. 앞으로 우리 영축총림은 불교정신을 선도하는 계율의 근본도량으로서 한국 불교의 종가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총리를 지향하는 수행공동체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천장, 벽 등에 흙과 재를 바르는 일을 하던 현문 스님의 아버지는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1892~1982)과 가까웠다. 어느 날 아버지가 스님에게 물었다.

“너 절에 가서 살까?” “응!”하고 말하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문으로 들어간 소년은 극락암에 이르렀다.

경봉 스님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시급은 저보다 사형 구하 스님에게 필요합니다.

부처의 진혼을 봉안하고 있는 금강의 계단. 일제강점기에도 불교 부흥을 위해 헌신한 구하 스님(1872-1965)은 임시정부와 애국지사들에게 독립자금을 전달하고 해방의 꿈을 키운 선지식으로 통도사의 사격을 일신할 뿐만 아니라 학교를 설립하고 인재양성에도 힘썼다. 대사 최고의 승려를 시봉할 만한 그릇은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경봉 스님이 써준 추천서 한 장을 들고 아버지와 함께 월하 스님을 찾아갔고, 월하 스님은 이 소년을 구하 스님에게 데려갔다. 현 주지 옆 당우에서 처음으로 구하 스님을 친견했다. 소년의 눈에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비쳤을 구하 스님이 떡 하나를 조청에 찍어 소년에게 건넸다. 첫 경험이었다.

“와 맛있다!” 절에 살면 이 떡을 실컷 먹겠지’

손을 놓고 떠나는 아버지를 향해 안녕히 계세요는 곧 돌아섰다. 아버지는 절을 떠나 한없이 울고, 아들은 절 안으로 들어가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주지 형문의 출가에 얽힌 일화다. 현문 스님은 15세 때 절에 들어간 뒤 60년 동안 죽은 적이 없다. 통도사는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했다.

발간과 고품격 명상숲길 조성 통도사 현문 주지스님 소임...『신편통도사지』 1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은 “심신을 다해 통도사 사부대를 외호하겠다”며 “나 자신의 수행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잘 지켜보겠다”고 말했다.현문 스님은 출가 후 줄곧 통도사에 머물렀다. 대중과 정진하고 예의를 갖추어 울력도 있었다. 1963년 산에 들어왔으니 60여 년 통도사를 품고 있던 자연이 사시사철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영축총림의 삶을 둘째로 관리하고 있다. 스님은 경험도 있고 연륜도 있어 사람을 만날 때 편하다고 말했다. 현문 스님은 2019년 5월 다시 주지를 맡은 이후 바쁘게 달려왔다. 전통을 지키고 근현대사를 조명하며 산중의 화합을 이룩했다. 무형문화자료를 집대성하는 영축문화연구원을 개원하고 용화전 미륵불 복장유물을 공개하고 동국대학교와 아카이브 구축 협약을 맺었다.

영축문화연구원은 통도사 사증의 역사를 집대성하고 현대 언어로 기록하는 「사지」발간을 전담한다. 도장석, 예불 등 일상의례에서부터 이운 등 특별한 의례까지 통도사에 이은 산중의 무형문화를 문화재로 등록하기도 한다. 통도사 창건 당시 자장율사의 업적을 조명하는 작업도 한다. 특히 통도사가 배출한 근현대의 선지식과 당대의 역사적 사건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가 이번에 나온 『신편통도사지』이다.

국보 290호로 지정된 적멸보궁과 금강계단, 다보탑벽화(보물 1711호)가 그려진 영산전 석조봉발(보물 471호), 3층석탑(보물 1471호) 등 현문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성보가 없을 것이다.

무풍류 소나무 암자길에 이어 고품격 명상림길 설계 침묵하고 숲길은 적정한 세계로 안내

산문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1km의 숲길을 무풍한송길이라고 부른다. 춤추는 바람으로 인해 차가운 기운의 노송이 물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8 아름다운 숲’으로 대상인 ‘생명상’에도 선정되었다. 그 숲길에는 100년에서 200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늘 걷던 길이니 60년 묵은 길 반인 셈이다. 앞으로 그 길을 산의 모든 암자에 연결할 계획이다. 현문 스님은 저 감나무도 나와 함께 자랐다. 예나 지금이나 붉게 물들어 가는 감나무 위로 시월의 달빛이 떨어지는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풍류가 없는 송도제도반”이라고 말했다.

보광전 앞뜰 감나무는 현문 스님의 도장이다. 영축산에는 경봉 스님이 기거했던 극락암을 비롯해 사명대사가 금강계단을 수호하기 위해 모옥을 짓고 수도했다는 사명암, 통도사 방장 송파 스님의 주지처이며 16만여 평의 도자기 대장경과 1만여 평의 산행길 서화스님(조계종 15대 종정으로 추대됨)의 주지처이자 16만여 평의 도자기 대장경과 1만여 평의 수행을 하고 있다.

현문 스님은 옛 선지식이 걸었던 숲길이다. 산중에서 정진하는 큰스님들과 함께 낫을 들고 가지치기를 하면서 길을 따라가 본다. 『화엄경』 속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 길을 떠났듯이 우리도 옛 선지식이 남긴 법향에 대해 걸어가고자 한다. ‘구법의 길’ 입니다. ‘명상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길과 함께하는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도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현문 스님의 계획대로라면 통도사만의 고품격 걷기 명상 숲길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숲은 침묵과 고요함을 준다. 숲속 길은 적정의 세계로 이끈다. 평온과 평정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내면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의 욕망을 제거할 기회가 있다. 숲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숲에서 평생을 보낸다고 해서 나올 첫마디가 아니다. 선원으로서의 정진을 통해 체득한 것일까.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현문 스님은 영축총림 선원, 덕숭총림 선원, 조계총림 선원, 정혜사 능인선원 등에서 정진해 20안거를 성취했다. 이렇게 안거를 이룬 것에 대해 현문 스님은 “‘대자유 찾기 공부’라고 들었다. 정직하게 사는 스님들이 모여 정진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 좋은 공부를 ‘나도 해보자’고 소망했다”고 말했다.

큰스님들이 정진한 선방을 되도록 많이 구경하고 싶었으므로 한 선원에서 잠시 지냈다. 개인 주거지에서 선방과 큰방을 오갈 때는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 나왔다. 가행정을 펼치려는 보리심의 발로였다. 그리고 돌 위에 놓인 신발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을 거르지 않고 실천했다. 오대산 문수산원에서의 감흥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스님은 벽 하나 놓고도 한겨울 산사에 내리는 눈을 처음 봤다. 소리만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고 말했다.

문경 봉암사에서 본 소나기 한 줄기도 시원하다고 한다. 형문 스님은 선실 문을 열면 산 아래 먼 곳에서 밀려오는 소나기가 보인다. 온다, 온다! 하면 앞마당에 많은 비를 뿌리고 산등성이를 넘는다. 진짜 시원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올린 점포도 단번에 없애 버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봉암사에서 정진할 때에는 현문 스님의 상좌 스님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상좌 두 명이 현문 스님을 찾아왔다.

「왜 그래」 「방청소로 찾아뵈었습니다」 「이 도장에서 은사, 상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도둑일 뿐이다. 청소는 내가 할게. 가시오.

양말 한 짝도 스스로 빨았던 스승 월하 스님(조계종 9대 종정1915-03)에게서 직접 배운 생활지침이다. 은사가 배운 가르침 중 하나는 겸손이다.

큰스님은 큰스님은 불교도의 부탁을 자주 쓰셨다. 내가 “은사님, 글을 아무에게나 써주지 마세요!”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달 아래가 뭐야?’ 내가 조금 피곤하면 그만이지’ 그동안 불교신자 여러분께도 존댓말을 쓰지 않았던 은사 선생님이라고 했다.

사부대중을 외호하고 나의 수행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통도사 방장 송파수님 15대 종정

영취산은 극락, 서운, 사명, 백련, 자장암 등 17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다. 10년간의 선방 가운데 무엇이 무리일까.

현문 스님은 “고금에 전하는 깨달음을 이 자리에서 논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수행이란 자신의 인격을 보다 높이려는 의지적인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도로서의 인격적 형성을 가능한 한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상대 정진을 통해 새롭게 인식한 것은 나눔과 균형이다.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다. 하지만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채우면 줄이고 모자라면 채워나가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주지로서의 균형, 승려로서의 균형, 한 인간으로서의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그러면 편견, 욕심, 집착도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은 “심신을 다해 통도사 사부대를 외호하겠다”며 “나 자신의 수행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잘 지켜보겠다”고 말했다.현문 스님은 출가 후 줄곧 통도사에 머물렀다. 대중과 정진하고 예의를 갖추어 울력도 있었다. 1963년 산에 들어왔으니 60여 년 통도사를 품고 있던 자연이 사시사철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영축총림의 삶을 둘째로 관리하고 있다. 스님은 경험도 있고 연륜도 있어 사람을 만날 때 편하다고 말했다. 현문 스님은 2019년 5월 다시 주지를 맡은 이후 바쁘게 달려왔다. 전통을 지키고 근현대사를 조명하며 산중의 화합을 이룩했다. 무형문화자료를 집대성하는 영축문화연구원을 개원하고 용화전 미륵불 복장유물을 공개하고 동국대학교와 아카이브 구축 협약을 맺었다.

영축문화연구원은 통도사 사증의 역사를 집대성하고 현대 언어로 기록하는 「사지」발간을 전담한다. 도장석, 예불 등 일상의례에서부터 이운 등 특별한 의례까지 통도사에 이은 산중의 무형문화를 문화재로 등록하기도 한다. 통도사 창건 당시 자장율사의 업적을 조명하는 작업도 한다. 특히 통도사가 배출한 근현대의 선지식과 당대의 역사적 사건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가 이번에 나온 『신편통도사지』이다.

국보 290호로 지정된 적멸보궁과 금강계단, 다보탑벽화(보물 1711호)가 그려진 영산전 석조봉발(보물 471호), 3층석탑(보물 1471호) 등 현문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성보가 없을 것이다.

무풍류 소나무 암자길에 이어 고품격 명상림길 설계 침묵하고 숲길은 적정한 세계로 안내

산문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1km의 숲길을 무풍한송길이라고 부른다. 춤추는 바람으로 인해 차가운 기운의 노송이 물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8 아름다운 숲’으로 대상인 ‘생명상’에도 선정되었다. 그 숲길에는 100년에서 200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늘 걷던 길이니 60년 묵은 길 반인 셈이다. 앞으로 그 길을 산의 모든 암자에 연결할 계획이다. 현문 스님은 저 감나무도 나와 함께 자랐다. 예나 지금이나 붉게 물들어 가는 감나무 위로 시월의 달빛이 떨어지는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풍류가 없는 송도제도반”이라고 말했다.

보광전 앞뜰 감나무는 현문 스님의 도장이다. 영축산에는 경봉 스님이 기거했던 극락암을 비롯해 사명대사가 금강계단을 수호하기 위해 모옥을 짓고 수도했다는 사명암, 통도사 방장 송파 스님의 주지처이며 16만여 평의 도자기 대장경과 1만여 평의 산행길 서화스님(조계종 15대 종정으로 추대됨)의 주지처이자 16만여 평의 도자기 대장경과 1만여 평의 수행을 하고 있다.

현문 스님은 옛 선지식이 걸었던 숲길이다. 산중에서 정진하는 큰스님들과 함께 낫을 들고 가지치기를 하면서 길을 따라가 본다. 『화엄경』 속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 길을 떠났듯이 우리도 옛 선지식이 남긴 법향에 대해 걸어가고자 한다. ‘구법의 길’ 입니다. ‘명상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길과 함께하는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도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현문 스님의 계획대로라면 통도사만의 고품격 걷기 명상 숲길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숲은 침묵과 고요함을 준다. 숲속 길은 적정의 세계로 이끈다. 평온과 평정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내면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의 욕망을 제거할 기회가 있다. 숲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숲에서 평생을 보낸다고 해서 나올 첫마디가 아니다. 선원으로서의 정진을 통해 체득한 것일까.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현문 스님은 영축총림 선원, 덕숭총림 선원, 조계총림 선원, 정혜사 능인선원 등에서 정진해 20안거를 성취했다. 이렇게 안거를 이룬 것에 대해 현문 스님은 “‘대자유 찾기 공부’라고 들었다. 정직하게 사는 스님들이 모여 정진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 좋은 공부를 ‘나도 해보자’고 소망했다”고 말했다.

큰스님들이 정진한 선방을 되도록 많이 구경하고 싶었으므로 한 선원에서 잠시 지냈다. 개인 주거지에서 선방과 큰방을 오갈 때는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 나왔다. 가행정을 펼치려는 보리심의 발로였다. 그리고 돌 위에 놓인 신발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을 거르지 않고 실천했다. 오대산 문수산원에서의 감흥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스님은 벽 하나 놓고도 한겨울 산사에 내리는 눈을 처음 봤다. 소리만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고 말했다.

문경 봉암사에서 본 소나기 한 줄기도 시원하다고 한다. 형문 스님은 선실 문을 열면 산 아래 먼 곳에서 밀려오는 소나기가 보인다. 온다, 온다! 하면 앞마당에 많은 비를 뿌리고 산등성이를 넘는다. 진짜 시원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올린 점포도 단번에 없애 버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봉암사에서 정진할 때에는 현문 스님의 상좌 스님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상좌 두 명이 현문 스님을 찾아왔다.

「왜 그래」 「방청소로 찾아뵈었습니다」 「이 도장에서 은사, 상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도둑일 뿐이다. 청소는 내가 할게. 가시오.

양말 한 짝도 스스로 빨았던 스승 월하 스님(조계종 9대 종정1915-03)에게서 직접 배운 생활지침이다. 은사가 배운 가르침 중 하나는 겸손이다.

큰스님은 큰스님은 불교도의 부탁을 자주 쓰셨다. 내가 “은사님, 글을 아무에게나 써주지 마세요!”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달 아래가 뭐야?’ 내가 조금 피곤하면 그만이지’ 그동안 불교신자 여러분께도 존댓말을 쓰지 않았던 은사 선생님이라고 했다.

사부대중을 외호하고 나의 수행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통도사 방장 송파수님 15대 종정

영취산은 극락, 서운, 사명, 백련, 자장암 등 17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다. 10년간의 선방 가운데 무엇이 무리일까.

현문 스님은 “고금에 전하는 깨달음을 이 자리에서 논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수행이란 자신의 인격을 보다 높이려는 의지적인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도로서의 인격적 형성을 가능한 한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상대 정진을 통해 새롭게 인식한 것은 나눔과 균형이다.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다. 하지만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채우면 줄이고 모자라면 채워나가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주지로서의 균형, 승려로서의 균형, 한 인간으로서의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그러면 편견, 욕심, 집착도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발간과 고품격 명상숲길 조성 통도사 현문 주지스님 소임...『신편통도사지』 2

현문 스님은 숲속 길은 적막한 세계로 안내한다. 평온과 평정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현문 스님은 주지 진산식 대신 이웃을 위한 나눔으로 회향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은 항상 부끄러워해야 한다.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돼 통도사가풍이 그렇다. 어른 스님들이 그렇게 살고 우리는 보고 자랐어 잘하는 중? 조석으로 예불, 조공양 대중과 함께 하자 더 잘살려면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된다. 노는 스님들은 부처님의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기존의 고답적 인식을 깨고 새 인생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그것은 수행의 힘이다. 나눔 복지 정진 구법의 길이 모두 선방정진에서 나왔다.

주지사 취임 직후 통도사 부대원들에게 전한 약속이 새롭게 들려온다.

저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영축총림의 정신적 사표인 방장 큰스님을 중심으로 통도사 사부대중을 외호하겠습니다.

보시를 소중히 여기고 절 안의 승려들과 정진하여 출가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죽비였다.

한편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송파 스님이 지난해 12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으로 추대됐다. 성파 스님은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말씀으로 많이 하기보다 말씀과 행을 같이하는 수행 중심으로 앞으로도 임무에 임하겠다”며 “지금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여러 사회적으로 어려운 때에도 항상 동체대비사상으로서 호국불교사상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형문 스님 월하 스님을 은사로 1966년 사미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과 흥천사 주지를 역임했다.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뒤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선원을 비롯해 문경봉암사 오대산 상원사 정혜사 능인선원 등에서 정진했다.